A. 상하이와 황허루 ― ‘개혁개방의 쇼룸’
상하이는 1978년 개혁개방 초기만 해도 외자 유치 속도가 더뎠다. 장강 삼각주 공업 벨트의 심장부라는 존재감 덕에 ‘언젠가는 폭발할 화약고’처럼 잠재력이 끓고 있었지만, 정작 80년대 중반까지는 인근 쑤저우·우시에 먼저 자본이 몰리는 역설을 겪었다. ‘특구보다 늦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 속에 1987년 비공식 주식시장인 ‘상하이식증권교역소’가 문을 열었고, 이때부터 거리 곳곳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바·술집이 태동했다.
90년대로 들어 변화 속도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1990년 상하이증권거래소(SSE)가 정식 개장하고, 같은 해 푸둥 신구 개발 계획이 전격 발표되면서 부동산·증권 투기 열풍이 도시에 불어 닥했다. ‘이중환율·이중금리’를 폐지하자는 논의까지 더해져 위안화 국제화의 문이 살짝 열린 것도 이때다. 황허루 역시 급속도로 변신했다. 노점상과 소규모 식당이 즐비하던 거리에 고급 요릿집·댄스홀·양식 바가 속속 들어섰고, 금봉황과 즈전위안(至真园) 같은 하이엔드 레스토랑은 ‘사장(總)’이라는 호칭 문화를 퍼뜨리며 밤거리를 화려하게 물들였다.
1994년 단일환율 체계 도입, 1997년 홍콩 반환과 아시아 통화위기는 상하이에 다시 긴장을 주었다. 재개발과 임대료 급등으로 초기 개척자 상당수가 외곽으로 밀려났지만, 살아남은 자본가는 브랜드화·체인화로 몸집을 불렸다. 번화(繁花)의 주인공 아바오가 황허루에서 체감하는 ‘폭발적 기회’는 바로 ① 증권시장 태동, ② 푸둥 개발 기대, ③ 사설 식음업 규제 완화가 겹친 1990~1993년 특별한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회·문화 키워드
- 해파이(海派): 서양 문화와 상업주의를 적극 수용하는 상하이 특유의 도시 기질.
- 개체호(個體戶): 국가기업 출신이 아닌 개인 사업자. 80년대 후반부터 신흥 부자의 상징으로 통했다.
- 쇼다이(炒股族): 1992~93년 폭등·폭락장을 온몸으로 겪은 ‘주식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세대.
- 상하이 방언: 황허루 상권에서 신뢰를 확인하는 암호 같은 언어.
B. 1993년, 글로벌 주식 온도계가 가리킨 풍경
1993년 세계 증시는 지역마다 전혀 다른 체온을 보였다. 중국 본토는 주식 투자 첫 황금기를 만끽하다가 거품이 터졌고, 홍콩은 반환을 앞두고도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며 ‘차이나 플러스’ 랠리를 이어 갔다. 한국은 1,000포인트 벽을 두드리며 문호를 넓힐 채비를 하고 있었고, 일본은 버블 붕괴 후유증에 허덕이며 ‘잃어버린 10년’의 어두운 입구로 들어섰다. 미국은 저금리와 클린턴 정부의 ‘신경제’ 낙관론 아래 다우·나스닥이 나란히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고, 대만은 노트북·반도체 수출 호황을 등에 업고 가권지수(현재의 TAIEX)가 4,600선을 돌파하며 ‘아시아 기술 허브’ 존재감을 키웠다.
중국 본토: 상하이종합지수는 2월 1,558포인트로 정점을 찍은 뒤 규제 강화 소식에 연말 833포인트로 급락했다. 갓 태어난 주식시장에 ‘정부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를 새겨 준 첫 번째 충격이었다.
홍콩: 항셍지수는 10월 8,000선을 넘어섰고 연말에는 드디어 1만 포인트를 돌파했다. ‘본토 개방 + 금융 허브’ 이중 프리미엄이 응축된 숫자였다.
한국: 코스피는 800~900포인트 박스권에서 몸을 풀었지만, 1,000선을 눈앞에 둔 신흥시장 특유의 에너지로 들끓었다. 외국인 한도 확대와 금융 자유화가 파도 소리처럼 들려오기 시작한 시점이다.
대만: 가권지수는 4,600선을 돌파하며 전년 대비 30% 가까이 올랐다. ‘PC OEM 천국’이란 별명처럼 노트북 수출이 가파르게 늘며 증시도 같이 뛰었다. 대만이 왜 이후 IT 공급망의 핵심 축이 됐는지 가늠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일본: 닛케이225는 1만7천 포인트 선에서 횡보했다. 3년 전 정점을 찍은 뒤 빠르게 내려왔지만, 아직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디플레이션의 긴 터널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미국: 다우존스가 3,754포인트, 나스닥이 776포인트까지 올랐다. 나스닥의 숫자만 보면 소박해 보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시스코·인텔 같은 회사가 시가총액 1위를 두고 다투던 ‘프리 닷컴’ 시대의 붐업 구간이었다.
이렇듯 1993년 동아시아 증시는 달아오르는 중화권(상하이·홍콩·타이베이), 엔진을 예열하는 한국, 냉각된 일본이라는 대비를 그렸다. 반면 대서양 건너 미국 증시는 IT 랠리의 서막을 알리며 세계 자본의 머니 플로우를 다시 끌어당기고 있었다.
C. 번화(繁花) 속 자본 서사와 세계 시장의 교차점
- 투기와 규제의 롤러코스터: 황허루 주식방의 열기는 상하이증권거래소가 200% 가까운 상승률 끝에 반 토막 난 실화를 닮았다.
- 본토·홍콩·대만의 ‘삼각 자본’: 항셍 급등과 대만의 IT 증시는 해외 네트워크를 쥔 리리나 장무거 같은 인물에게 실감 나는 배경이 된다.
- 한국과 일본의 희비: 코스피가 출발선에서 힘껏 도약을 준비할 때, 닛케이는 탄식 속에 가라앉았다. 이 온도 차는 ‘아시아 성장 축 이동’이라는 서사를 강화한다.
- 나스닥 예열의 함의: 드라마 후반부에 등장할 ‘정보는 돈보다 빠르다’는 대사가 뉴욕 시장의 분위기를 빼닮아, 아바오가 왜 전 세계 시세판을 주시하는지 설득력을 높인다.
결국 1993년 상하이는 투자·소비·개방이 삼박자를 이룬 동아시아 최고 성장 스토리의 중심 무대였다. 황허루라는 작은 거리는 그 열기를 압축한 도시 축소판이었고, 번화(繁花)의 인물들은 그곳에서 사랑과 욕망, 탐욕과 신뢰를 저울질하며 자신의 운명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