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한민국이 IMF 외환위기에 휘청이던 그 시절.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업이 줄줄이 무너지던 그때, 한국인의 식탁을 지켜온 '국민 소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이름, ‘국보소주’. 수십 년 동안 국민의 술로 자리 잡았던 이 브랜드는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자금난에 시달렸다. 여느 기업들처럼 구조조정 대상이 되거나 헐값에 팔려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끝까지 회사를 지켜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기업을 ‘지키려는 자’ vs ‘사들이려는 자’
영화 《소주전쟁》은 당시 실제 있었던 소주 기업 인수전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다. 이야기는 국보소주의 재무이사 표종록(유해진 분)이 주축이 되어 회생을 위한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그가 맞서야 했던 상대는 글로벌 투자사 ‘솔퀸’에서 파견된 M&A 전문가 최인범(이제훈 분).
겉으로는 투자 유치였지만, 실상은 기업의 핵심 자산을 매입하고 기술과 브랜드를 해외로 넘기는 ‘먹튀 전략’이 숨어 있었다. 자산 가치를 정확히 꿰뚫은 최인범은 회사를 철저히 분석하고 임직원을 설득하는 전략을 펼친다. 이에 표종록은 현실의 벽과 싸우며, ‘국민 소주’라는 상징을 지키기 위한 승부수를 띄운다.
이들의 갈등은 단순한 경영권 다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서와 자존심을 건 싸움이었다.
감독 없는 영화가 말해주는 진심
《소주전쟁》은 영화 제작 단계에서도 파란을 겪었다. 당초 연출을 맡았던 최윤진 감독은 계약 해지 문제로 소송에 나섰지만, 법원은 제작사의 손을 들어주며 감독 크레딧 없이 개봉이 결정됐다. 영화계에선 드문 사례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은 오히려 영화의 주제와 기묘하게 겹쳐진다. 거대한 자본 논리에 맞선 사람들, 이름조차 남지 않아도 자신의 역할을 다한 존재들. ‘감독 없는 영화’라는 상징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름보다 정신’이라는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실제 모델은 ‘진로소주’? 그 진실은…
영화 속 국보소주가 실존 기업인 ‘진로’를 연상케 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진로 역시 자금난으로 인해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고, 이후 해외자본과의 인수 협상이 오가며 복잡한 구조조정 과정을 거쳤다.
비록 영화는 실명을 사용하지 않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장면들이 스크린을 통해 되살아난다. 당대 광고 문구, 소주병 디자인, 회의실 풍경까지… 90년대 후반 한국 사회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때 그 감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때 그 시절, 소주 한 병의 무게
자, 여기서 잠깐! 여러분은 혹시 1997년 겨울, 편의점 앞 철제 테이블 위에서 손 호호 불며 소주잔을 부딪치던 그 풍경을 기억하시나요?
그 한 병의 소주에 담긴 건 단순한 술이 아니었습니다. 친구와의 위로, 해고당한 동료와의 눈물, 회식 자리의 침묵, 때론 아버지의 고된 하루를 말없이 어루만지던 그것. 소주는 그냥 알코올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감정 저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소주전쟁》이 더 뭉클합니다. 이건 소주 회사를 지키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한 세대가 지키려 했던 '삶의 존엄'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 관람 포인트 한 줄 요약
"소주병 속에 담긴 건 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2025년 5월 30일, 극장에서 그 감정을 다시 마주해보시죠. 찐 소주 한 모금처럼, 속이 울컥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