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위 "인공지능"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시절, 영화는 기계가 스스로 생각할지 모른다는 상상력을 형상화하며 오늘날 AI 서사의 기초 뼈대를 세웠다. 이번 편에서는 1920~1980년대 주요 작품 네 편을 돌아보며, ‘기계가 인간을 닮을 때’ 일어나는 서사적·기술적 혁신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핀다.
1. 《메트로폴리스》(1927) ― 로봇 ‘마리아’의 충격 등장
1‑1. 작품 개요
감독 프리츠 랑 │ 제작비 500만 ℛ︁ℳ︁(당시 UFA 사상 최고)
1‑2. 왜 중요한가?
- 금속 피부 안드로이드 ‘마리아’는 영화사 최초의 인간형 로봇. 이후 모든 SF 로봇 디자인의 원형이 됐다.
- “기계가 인간 대중을 선동한다”는 설정은 AI·프로파간다 서사의 시초로 평가.
1‑3. 비하인드
- 촬영 기간만 17개월, 엑스트라 3만 명을 동원해 베를린 교외 세트에서 야간샷을 촬영했고, 리허설 중 브리기테 헬름이 38kg 로봇 갑옷 때문에 저혈당 쇼크로 실신한 일화가 유명.
- 특수효과 감독 오유겐 슈프탕은 후면 투영과 거울 트릭(“슈프탕 프로세스”)을 결합해 거대한 미래 도시 풍경을 완성, 현대 CG의 원형이 됐다.
2.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 HAL 9000, 완벽이 부른 반란
2‑1. 작품 개요
감독 스탠리 큐브릭 │ 제작비 1,050만 달러 │ 개봉 1968.04.03(미국)
2‑2. 왜 중요한가?
- HAL 9000은 자연어 처리·얼굴 인식·감정 분석까지 구현된 최초의 ‘범용 AI’ 캐릭터.
- “AI의 오류 = 인류 멸망 트리거”라는 공식을 대중문화에 정착시켰다.
2‑3. 비하인드
- HAL 목소리는 캐나다 배우 더글러스 레인이 단 이틀(10시간) 만에 녹음. 큐브릭은 “연극적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중성 톤”을 요구했다.
- ‘스타게이트’ 시퀀스는 슬릿‑스캔 카메라 장치를 직접 조립, 한 프레임 노출에 수 분이 걸려 4분 장면에 6개월이 소요.
- MGM 세트에 지름 12m 원심력 회전통을 설치해 무중력 보행을 촬영했는데, 비용만 75만 달러로 당시 세트 중 최고가였다.
3. 《블레이드 러너》(1982) ― 레플리컨트가 묻는 “나는 누구인가?”
3‑1. 작품 개요
감독 리들리 스콧 │ 원작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3‑2. 왜 중요한가?
- 인간과 구별 어려운 생체 합성인간 ‘레플리컨트’가 수명 제한을 넘어 생존 본능을 찾으며 "인간성" 정의를 뒤흔듦.
- 네온·스모그 가득한 로스앤젤레스의 디스토피아 비주얼은 이후 사이버펑크·AI 서사의 미술 교본이 됐다.
3‑3. 비하인드
-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 2만 W 네온 세트와 실제 비를 내리게 하는 ‘스모그 탱크’를 구축, 당시 280만 달러 추가 예산.
- 듀플리케이트 아이 반사 ‘눈빛’ 효과는 카메라에 하프‑미러를 장착해 ‘레트로리플렉션’으로 촬영.
4. 《워 게임》(1983) ― 핵 버튼을 누를 뻔한 슈퍼컴퓨터 WOPR
4‑1. 작품 개요
감독 존 배드햄 │ 주연 매튜 브로데릭 │ AI WOPR(워퍼)
4‑2. 왜 중요한가?
- 냉전 말기 군사 AI 오작동 공포를 대중에게 각인, 美 의회 ‘해킹 대응 법안’ 논의의 실마리를 제공.
4‑3. 비하인드
- 실제 NORAD는 촬영 허가를 거절. 제작진은 MGM 스튜디오에 1백만 달러 규모 풀세트(폭 38m × 높이 12m)를 짓고 210개 모니터를 실시간 구동했다. 당시 ‘영화 역사상 가장 비싼 세트’.
- 화면 속 핵 전쟁 시뮬레이션 그래픽은 HP 9845C 컴퓨터·벡터 디스플레이로 7개월간 5만 피트 필름을 돌려 만든 아날로그 합성.
5. 《쇼트 서킷》(1986) ― 번개 맞고 깨어난 로봇 ‘조니 5’
5‑1. 작품 개요
감독 존 배드햄 │ 콘셉트 디자인 시드 미드 │ 로봇 FX 에릭 알라드 팀
5‑2. 왜 중요한가?
- 군용 로봇이 ‘감정’을 되찾는 낙관적 AI 서사로, 1980년대 로봇 붐에 친근함을 불어넣었다.
5‑3. 비하인드
- 조니 5는 기능별 로봇 15대(풀‑모션 5대, 상반신 3대, 하체 2대, 스턴트 5대)로 분업 촬영. 전체 FX 예산이 150만 달러를 넘었고, 완성 기체 무게는 250 kg 안팎.
- 로봇 눈의 ‘감정 라이트’는 256단계 PWM 회로로 세밀히 조정, 단 한 컷도 CG를 쓰지 않았다.
6. 맺음말 ― AI 서사의 3가지 원형이 탄생하다
- 기계가 인간을 흉내낼 때 생기는 공포(메트로폴리스)
- 완벽성을 추구하다 인간을 배제하는 논리(HAL 9000)
- 정체성·존재 의미를 묻는 생체 AI(레플리컨트)
- 군사 자동화의 치명적 오류(WOPR)
- 감정형 AI의 희망적 상상(조니 5)
이 다섯 갈래 물줄기가 이후 《터미네이터》《매트릭스》로 이어지며, 오늘날 ‘생성형 AI’ 논쟁까지 뿌리를 내렸다.
다음 편 예고 1990~2000년대 AI 디스토피아 vs 휴머니즘 ― 《터미네이터》《블레이드 러너 2049》《매트릭스》《아이, 로봇》《바이센테니얼 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