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의 〈번화〉 배경이 된 상하이, 그리고 1993년 국제 경제 흐름
A. 상하이와 황허루 ― ‘개혁개방의 쇼룸’상하이는 1978년 개혁개방 초기만 해도 외자 유치 속도가 더뎠다. 장강 삼각주 공업 벨트의 심장부라는 존재감 덕에 ‘언젠가는 폭발할 화약고’처럼 잠재력이 끓고 있었지만, 정작 80년대 중반까지는 인근 쑤저우·우시에 먼저 자본이 몰리는 역설을 겪었다. ‘특구보다 늦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 속에 1987년 비공식 주식시장인 ‘상하이식증권교역소’가 문을 열었고, 이때부터 거리 곳곳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바·술집이 태동했다.90년대로 들어 변화 속도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1990년 상하이증권거래소(SSE)가 정식 개장하고, 같은 해 푸둥 신구 개발 계획이 전격 발표되면서 부동산·증권 투기 열풍이 도시에 불어 닥했다. ‘이중환율·이중금리’를 폐지하자는 논의까..